일기에게
오늘 큰 결심을 했어.
나는 정말 과분한 기회를 얻었다. 수험생 때 피나는 노력을 했다곤 생각하지만, 연세대학교에 합격한 것은 순수 행운이었다.
2023년 1월 31일,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고, 이내 혼자 방에 남겨졌다. 주위의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 비현실적이었다. 그것들의 물성은 동일했지만, 내가 달라지니 그것들도 달라졌고, 그 이질감은 내 인지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어지러워서 침대로 몸을 던지니 천장이 보였다. 천장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무 기뻤고, 믿기지 않았다. 천문우주학과에 합격했다. 난 우주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매료되어 외국 웹 사이트를 뒤져가며 천문학 지식을 습득했고, 6학년 때 Falcon 9 로켓의 첫 해상 착륙 성공을 생방송으로 보았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항상 천문학자였고, 고등학교를 소프트웨어 특성화고를 가 잠시 그 꿈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원서 접수 기간 소프트웨어학과를 찾아 끝없이 스크롤할 때 갑작스레 나타난 천문우주학과의 이름에 잊어버렸던 열정이 다시 불타올라 지원한 것이고, 합격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자기합리화를 하면서까지 천문학을 좋아해야만 했다. 그러나 믿고 싶은 사실과, 내 내면이 전달하는 사실은 너무나도 어긋났다.
나는 천문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학생 때 게임만 한 나에게 꿈은 없었고, 희미한 지향점마저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반고를 갈 성적이 안되어 떠밀려온 특성화고에선 과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 점수가 예상보다 잘 나와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를 지원한 것이다. 나는 천문학을 자연’과학’으로 바라보는 눈이 없었고, 그런 내가 천문우주학과에서 수학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남은 1월은 너무나도 짧았다.
새내기의 2월은 새로운 환경과의 첫 조우다.
아마도 캠퍼스 투어를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처음 입는 청바지와 어설프게 구겨진 자켓을 입고 집을 나섰다. 긴장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며 발걸음을 뗀 나를 가득 채운 불안감은 어머니의 당부가 들어올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대학 동기들을 조우하기 두려웠다.
수능 때 과학탐구를 보지 않아 이학 지식 없이 이과대에 들어왔고, 15번을 찍어 맞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수학 1등급을 수능에서 받았고, 특성화고 특별 전형으로 내 성적에 과분한 대학에 지원할 용기가 생겼고, 운 좋게 정원 1명 안에 들었고… 난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다.
2호선 신촌역에서 내려 연세대 삼거리에 도착하니 저 멀리 천문학과 과기를 들고있는 사람과, 어설픈 패션으로 깃발 주변을 선회하는 여러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내 동기들이겠구나. 보행자 신호가 켜지는 1분 남짓한 시간동안 가능한 대화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았다.
갓 사회로 나온 대학교 신입생들의 사고는 고등학교 3학년에 멈춰있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 과정에서 규격화된 사고 상에서 나올 수 있는 ‘스몰 토크’ 주제는 매우 한정돼있었다.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나요? 수시세요, 정시세요? 와 같은 질문은 깃발 주변의 낯선 이들과의 공통점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한 해당 질문을 물어보는 그들 사이에선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확실히 공유하고 있는 은은한 성취감 또는 아쉬움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그 장소에서는, 나 뿐이었다.
‘ 치열한 경쟁을 거쳐 목표를 이룬 자들이야. 그들은 나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을거고, 특성화고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나는 이 학교에 들어올 정량적인 수준이 아니었지. 내가 만약에 그들이었다면 특성화고 출신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노력의 정도를 비교할 거야. 나조차 내 출신에 대해 떳떳하지 않은데, 그들이 알게 된다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거짓말은 언젠간 들통나. 하지만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들이 나를 무시할까봐 무서워… ‘
보행자 신호가 켜졌다.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깃발을 향해 걸어갔다. 실루엣이 커져 형상이 되고 그들과 나는 서로를 인식하였다.
나와 그들의 ‘스몰 토크’ 시간은 일종의 청문회이자 러시안 룰렛이었다. 나의 차례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무조건 실탄이 들어있을 것이고, 내 입에서 ‘특성화고’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두려웠다. 대화의 총구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향했고, 결국 거짓말을 하였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불안감에 도망쳐 나왔지만, 그곳에도 동기가 있었다. 나와 내리는 역이 같아 신촌에서 잠실로 가는 약 35분간의 2호선 전철을 단 둘이 가게 되었다. 다수에게 분산되었던 대화의 초점이 첨예해져 대화를 구체화시켰고, 거짓말 또한 구체화되며 전철을 내릴 즈음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었다. 이후 역에서 내려 멀어지는 낯선 동기의 뒷모습을 보며 죄의식을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결정 중 하나였다. 그 때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했더라면, 훨씬 더 일찍 떳떳하게 대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 날의 기억은 다가올 일 년을 옭아매는 구속구가 되었다.
대학교 첫 학기가 기억나? 겁많고 소심했던 나는 결국 대학에 들어오기 전 정말 큰 실수를 했어. 그 실수는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개강을 맞은 내가 사회로 나가지 못하도록 옥죄었어.
나는 동기들을 피해다녔어. 동기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내 자신이 만들어낸 두려움으로 나는 혼자 도망쳐 기숙사 방으로 들어갔어. 내 심정을 누구에게던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누구나 동일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할 자신감이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노트를 펴내 마음을 토해냈어. 흰색 종이 위에 분노, 슬픔, 두려움, 외로움이 담긴 글씨가 폭풍처럼 휘갈겨 나왔고 나의 맘은 한층 편해졌어. 그 다음날, 노트에는 한층 더 밝은 기대와 열정이 더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졌어. 그리고 그 다음날은 학업과 인간관계 대한 걱정이, 그 다음날, 다다음날에는 내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세상에 대한 글을 써내려갔어.
그것이 층층히 쌓여가 너가 됐어.
나는 나다. 무의식에서 기원해 망각으로 흐르는 비정제된 사유의 흐름을 길어 종이 위에 실체화한, 방황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나였다. 나를 통해 나는 가장 원초적인 자신을 마주볼 수 있었고, 내 고통의 본질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너와 이야기하며 한 가지 결심을 하였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과탑을 해 동기들 앞에 떳떳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자신없는 물리부터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익혀나가기로 결심했어.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배운 일반물리학실험 책을 펼쳤어. 하지만 물리 교재에서 제시하는 사고의 흐름은 너무 낯설어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 교재의 각 장, 각 장이 너무 높은 고비였고,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푸는 동기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지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내 자신감은 더더욱 바닥을 쳤어. 그런 나를 구제해준 아주 고마운 과목이 있는데, 정말 의외지만 화학이야.
화학은 물리와 달리 암기 요소가 대부분이기에 시간을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었어. 이때 즈음 동기들과 화학 스터디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은 동기들에게 나를 보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자 증명의 장이었어. 그들이 나를 공부 잘하는 사람, 학문에 열의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를, 나중에 그들에게 내 출신을 밝혔을 때, 정말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랐어. 정말 이기적이지만, 새내기의 실수라고 생각해줘.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아. 그러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니겠어?
스터디를 같이 진행한 동기들은 정말 지적이었고 배울 점이 너무 많았어. 동기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 들으며 그것이 도출되기까지 얼마나 깊은 지식과 사유가 관여했을까를 가늠해보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어. 그들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닮고 싶었어.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학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 하지만 그러기에,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스스로 도망치려고 했어. 그들과 나는 확실히 대비되었고 나는 이러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었어. 그러기에 난 공부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되었어.
수험생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 1교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폐관을 알리는 노래가 나올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어. 기숙사에 돌아온 후엔 독서를 하고 일기를 쓰다가 잠들었어. 핸드폰을 보지 않기 위해 시작한 루틴이었지만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지. 독서를 통해 새로운 통찰이나 직관을 얻고, 그것을 너와 논의하며 내 인지를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구체화되는 너는 다른 사람 같았고, 너를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어. 덕분에 정말 단조로웠던 내 일상이 외롭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 혼잣말이 는다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나가다보니 중간고사가 다가왔어. 미적벡 시험은 수능보다 떨렸던 것 같아.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일상을 반복해나가니까 어느새 기말고사가 끝나있었고 방학이 시작됐지.
내 대학교 첫 학기 학점은 4.3/4.3이었어. 엄밀히 말하면 일물실을 드롭했기에 완전 과탑은 아니었지만, 내게 과탑은 절실했기에 애써 무시했어. 나는 과탑을 했고, 내가 이곳에서 공부할 자격을 증명한거야. 나 자신한테 떳떳해졌기에, 타인에게도 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고 방학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내 목적을 다했지만, 어느새 내가 나의 목적이 되어있었다. 한 학기동안 타인과의 교류 없이 나는 나의 인지를 아래로 넓혔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방학이 끝날 때 까지도 지속되었다. 특이점에 당도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해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내가, 넘치는 자기애를 기반으로 만물을 이해하고 만인을 사랑하려고 하는 내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런 나에게 매료되었다. 내가 정의한 공리의 조합으로 세상 만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확증 편향을 인지하고 사고를 교정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나로부터 완성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나를 닮고 싶었고 잃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 또한 사고의 과적합이자 확증 편향이었다. 부끄럽지만 필요했던 과정이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가지고 2학기를 맞았어.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동기들 덕분에 과 생활에 점점 더 적응해나갔어. 예상대로 타인과의 교류는 너무 즐거웠고 덕분에 나에게서 눈을 돌려 타인을 보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와의 대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 어느새 너는 내 사고의 가장 중요한 축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르소나가 되어있었어. 하지만 너는 점점 더 무서워졌어. 가장 깊은 나를 마주볼 자신이 생길 수록 일기 위에는 단 하나의 정제 과정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생각이, 본질적인 충동이 쓰여졌어. 어제의 너를 오늘의 내가 무서워 하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턴 난 일기를 쓰고 다시 읽어보지 않았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어. 나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 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시선을 돌려 그 조각을 사람들에게서 찾기 시작했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했지만 유희적, 표면적인 대화는 너의 빈자리만 더 강조했고, 그것을 채우려면 너를 보여야 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가장 완벽했던 너가 어느새 가장 부끄러운 내가 되었기 때문이야.
역설적으로, 그러기에 너를 내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사유하는 인간이기 전에 동물이기에 사람들은 사회에 나오기 위해 여러 겹의 가면을 썼을 거야. 그들이 인지하던 인지하지 못하던 각자 자기만의 “너” 를 억누르며 사회에 맞춰가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이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이자, 모든 행동의 기저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숨기고 있는 것일거야.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나서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진다면, 서로의 눈 너머를 마주볼 수 있다면?
이것이 진짜 나인데, 이런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이었었지만, 아직은 부족했어. 기회는 많았지만 항상 놓쳤고, 그렇게 내 1학년이 끝났어.
2학년이 시작됐어. 신촌에는 과방이 있었고 모두가 동일한 전공을 들었어. 전공 수업이 끝나면 과방으로 모여 수다를 떨다 헤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더이상 표면적이지 않았고 내 추측은 확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어. 모든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열어주길, 상대방이 용기를 내기를 그렇게 바라고 있는거야.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한 번 기회가 왔고, 이번엔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기에 시도해봤어. 가면을 벗어던지고 대화를 깊게 끌어내렸어.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본성을 목도했지. 우리의 생각은 근원부터 너무나도 달라서 표면만 봐서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원초적인 질감은 동일했고, 난 그것이 좋았어. 우리의 인간됨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근원에서 솟아오르는 행복을 느꼈고, 우리라면 서로의 가장 깊은 내면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한 거리가 생겼고,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것이 껄끄러워졌어. 가장 가까운 생각까지 끌어올렸는데 왜 멀어진거지? 이러면 안되는데, 내 예상과 맞지 않은데.
내겐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나의 이상향이자 우리의 이상향이다. 그것을 내보인 방식이, 상황이, 아니면 우리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기에 계속 시행착오를 거쳤다. 내 행동을 미세 조정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나와 우리의 조합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고, 몇몇 결과는 되돌릴 수 없었다. 11월의 어느 날에 나는 상대에게 정신에 문제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 다음주엔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을 잃을 뻔했다.
더이상 누구와도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표면만을 바라봐야만 해도, 그 가까움이 너무나도 적당해야만 해도 괜찮았다. 내 이상과 멀어지는 길이지만, 항상 현실은 이상과의 타협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나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떠나 나를 사회에 맞게 다시 포장했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그들과 멀어지기 싫었기에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어. 원래 마케팅에서도 브랜딩보다 리브랜딩이 더 어려운거잖아? 더군다나 리브랜딩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니까,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좀 부끄럽긴 한데, 지금 돌아보니 나는 생각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사실은 생각이 깊은, 그니까 반전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거 같아.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만의 진심이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어야 했어.
내 사고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연습했어. 처음엔 로봇같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더라. 한두달이 지나니 사회성이 늘었다라는 평가를 듣기 시작했어. 매일매일을 평범하지만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우리들은 더더욱 가까워졌어. 잔잔히 흐르는 시간은 내게 안정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나는 이대로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을 억누른다고 해소할 수 있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로써 살아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이렇게까지 나를 억눌러가며 살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나의 모든 것을 아량껏 이해해줄 누군가가 너무나도 필요했어.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넓히며 누군가를 계속 찾아다녔어. 이상적인,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야 했기에, 우리들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어. 어느새 우리들의 교류는 너무나도 얕아져 나를 끝없이 외로움에 매말라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필사적이게 되었어. 극도로 불안한 마음은 약간의 기폭제만 있으면 터져나와 최악의 실수들로 이어졌고,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으로 나를 더더욱 가두는 악순환이 이어졌어.
2025년 10월 초입의 어느날, 나는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방을 나서 열심히 외로워하다가 밤 늦게 돌아왔어. 불이 꺼진 기숙사 방에는 나와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만 있었어. 책상 조명을 켜니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물체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그것과 대비되는 새까만 노트가 있었어. 그것은 마치 블랙홀처럼 위에서 쏟아져내리는 빛과 내 시선을 빨아들였고 난 어느새 그것을 잡고 있었어. 그것은 거의 일 년 동안 꺼내보지 않은 너였어. 나는 너를 펼쳐 내가 걸어온 길을 처음부터 천천히 따라가보았지.
너는 자기 혐오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고 내 이상이 되었어. 그러기에 나는 너를 나와 세상에 투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모든 시도에서도 나는 완전하지 못했어.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외로웠어. 나는 그저 내 진심을 전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 당시 나에게 너는 유일한 지향점이었어. 너의 찬란한 빛만이 내가 완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찾아 헤맸어. 너는 무결했기에 문제는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있어야 했던 거야.
그러나 올해 너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자 너에게 가려져있던 빛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 빛들은 너무나도 다원적이고 옅게 산개되어있어 나로 하여금 외로움을 느끼게 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사고를 너와는 다른 축으로 넓혔어. 그리고 그곳에 올라 너를 바라봄으로써,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어.
내가 지금까지 진솔하고자 했던 것은 경솔함이었고,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타인에겐 한없이 불쾌하고 적나라한 마찰음이었어. 가장 그대로의 생각이 가장 진실된 생각이 아니었던 거야. 진심은 생각의 흐름에서 그대로 길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정제하고 정련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인 거지.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도 마찬가지기에 타인에게도 그런 여유를 만들어줘야 해. 우리의 세심한 거리둚이, 오히려 우리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거지.
내 결핍의 원인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게 나뉘어 있었고, 해결책 또한 서로에게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거야. 내가 방황했다고 생각한 길이 가장 곧은 길이었던 거야.
즉시 행동해야 했어. 오늘의 깨달음이 수없이 많았던 새벽의 감상 중 하나로써 흘러내려가면 안됐기 때문에, 미래의 내가 이것 또한 수많은 시행 착오 중 하나라 생각할 지라도 해야만 했어. 밤을 새면서 블로그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만들었어. 그 다음날부턴 오래 전 일기들을 다시 꺼내 처음부터 읽으며 다듬고 다듬어 글로 옮겼어. 글을 마무리 지을 때 즈음엔 10월이 끝나가고 있었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일거라 믿어.
이 글은 나의 일기에게 다시, 그리고 아직 모르는 누군가에게 쓰는 첫 글이야.
일기에게
오늘 큰 결심을 했어.
다시 한 번 세상에 내 진심을 전해볼거야.
하지만 이번엔 내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나의 진정한 마음를 전할거야.
가장 본질적이지만 순수한 생각만을 이곳에 하나하나 포개 올려놓을 거야.
내 진심이 쌓이고 쌓여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누군가에게
닿을 때까지.
2025년 10월,
기숙사 책상 앞에서
가을과 함께 펼치고
가을과 함께 끝맺은
너에게
p.s
항상 정보 전달만을 위한 글만을 쓰다가 문학적인 글을 써보고 싶어 노력을 해봤으나,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문학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늘어간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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