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Hyeon Lee

  •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

    문우가 한명 더 늘었다. 뜻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행복한 원동력이 되지만, 그이가 문인이라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정적인 활자를 매개로 뜻을 주고 받음은 삶과 경험의 역동성을 정제하고 잠재운 사유의 정수만을 담아 전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문인은 자연스럽게 시공간적 여백을 백지 위에 새겨 상대에게 전달하고, 전달받은 여백의 무게를 헤아린 만큼 무게를 담아 그것을 채워 회신한다. 시간을 들여 동일한 체적의 활자와 여백에서 다원적인 깊이와 의미를 발굴해냄은 오직 글을 씀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에 문우와의 만남은 항상 특별하다.

    문득 그간 교류한 문우들의 글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 그들의 블로그를 찾아보았고, 그 중 한 사람의 블로그에서 내 시선이 멈추게 되었다. 작년 11월달 즈음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인데, 그 당시 나는 자신에게 몰두하며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기에 그의 글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흘러넘겨버렸다. 그의 블로그는 그 이후로 새로운 글이 업로드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 달동안 활자는 불변하였지만, 나의 심상은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에게 이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글의 여백에 녹아들어 새로운 감상을 직조해내었다.

    글에 대한 더 풍성한 감상을 느낄 수 있음도 좋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의 문체였다. 그의 문체를 곱씹을수록 그것이 가진 매력이 나의 심장을 강타해왔다. 그와 나의 문체를 대조해보며 알게 된 점은, 내가 구사하는 문장은 길이가 훨씬 더 짧고, 불필요한 언어의 나열을 하여 흐름이 정제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그의 문장은 적절한 은유와 한자어를 사용하여 함의를 압축하여 표현하면서, 문학성과 현학성의 균형을 맞추어 정제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문체는 개인의 심상을 대변하기에 그것의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나는 섬세하면서 곳곳이 뻗은 그의 문체에 대한 일종의 동경을 느끼게 되었다.

    동경할 수 있는 글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또한 훌룡한 교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 가져다준 검토와 발전의 기회를 잡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모방으로부터 시작하여, 융합과 창조에 이르기까지 더욱 더 멋지고 정제된 글을 써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볼 것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시 읽기
    • 글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외우기
    • 한자어 공부하기
    • 최대한 다양한 문체를 필사해보기
    • 소중한 문우들과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다시 한번 우연이 가져다 준 소중함에 감사를 한다.

    2026년 2월 15일
    한결같은 책상 앞에 앉아서

  • 두 번째 걸음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습니다

    별은 아득히 빛나고
    별 아래엔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제가 걸어온 흔적들로 하여금
    고통은 저의 더없는 벗이 되었습니다

    쓰러져 스러지지 않는 한 별은 존재하고
    길 또한 존재할 것입니다

    별을 좇아 앞으로 내딛어
    존재의 고통을 힘껏 눌러 새깁니다

    별은 아직도 아득히 빛나고
    별 아래엔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 첫 걸음

    하나님께서 어떤 천사에게 세 가지 질문을 주셨다.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는 지상으로 내려가 인간과 함께 살며,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았다.

    사람 속엔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육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결핍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나는 온전한 나로서 속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가


    왜 현재의 나는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내가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가면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타인과의 불협화음이 보이지만, 그 사람의 흠결이 보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을 때 가면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 사람들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에 가면을 쓰는 고통을 감내하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1년도 채 안됐다. “나는 나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기준도 매우 엄격해”. “나의 이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내 이상형은 나보다 항상 앞서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각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바로 정이 떨어진다”.

    나는 분명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왜 사람에게 흠결이 보이면 거부감이 들고 싫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애착을 원했다.

    사랑과 애착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사랑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축복해주는 마음이다. 인간 본질에 내재된 근원적인 선이다.

    하지만 애착은 조건이 붙는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달콤해보이는 이름의 이면엔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는 통제 욕구가 존재한다. 그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온전히 속함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애착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타인을 통제하려 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있는 한 집단은 온전히 속함의 속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온전히 속하기 위해선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인지하니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사람들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 같다. 몇몇 얼굴들이 지나간다.

    나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나와 충분히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방황하였지만, 그들은 내 존재를 사랑했기에 항상 곁에 남아주었다.

    그 수고를 인지하지도, 감사해하지도 못할 망정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일방적으로 도망치는 것은 너무나도 잘못되었다.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기 위해선 우선 타인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이상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동기들에게, 가족들에게, 나와 함께 있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에게 준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너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어. 너희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싶어.


    풀리지 않은 것들이 아직 많다.

    타인을 어떻게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타인의 흠결에 어떻게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흠결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는 가면을 써서만 해결할 수 있는가.

    타인을 향한 사랑과 자아의 소실 중 어떤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내가 온전히 속할 수 없는 집단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나 하나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방학은 충분히 많이 남았다.

  • 추락

    이미 저지른 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후회가 된다. 나는 내 상처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분명 모두와 멀어진다면, 더이상 시선을 받지 않게 된다면, 해방감을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나도 아프고, 죄책감과 미안함만 늘어난다.

    내가 가는 이상향의 길이 타인에게 해만 끼치는 길이라면,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자신에겐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면서 타인을 의미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이기심이자 모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요하다.

    희미한 불빛만이 저 멀리서 새어 나온다.

  • Dear Diary

    Dear Diary

    수많은 나를 기워내 사회에 속하였다.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12/18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는 너무 즐거웠다! 마음 맞는 동기들이 있었고, 동아리에 맘껏 속하며, 스쳐 지나갔다고 여긴 인연들과 깊은 교류를 하였다.

    오늘은 동기들이랑 종강 파티를 하는 날이다! 함께 모여 보드게임 카페에 가고, 술을 마셨다. 그 순간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말 즐거웠다. 그러다가, 술기운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화자에서 청자가 되기로 하였다. 마침 구석 자리였기에 훌룡한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오가는 대화에만 집중해보았고, 그러자 부드럽게 흘러가는 맥락 속 불연속점, 다들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에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력만으로 그 장소에 모이게 된걸까. 아니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증명하고 싶었다. 방학은 충분히 길었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다.


    12/22

    지인을 만났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에 가면을 만들어 썼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공통점마저 사라지니까.

    그 가면은 남성성의 가면이었다. 그 가면을 쓴다는 것은 본능에 자아를 의탁하는 오묘한 감각을 동반한다. 맥락 없이 오가는 섹드립에 무감각해지고, 타인을 객체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남고 출신이라 어느정도 템포를 따라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잘못됨을 느껴간다. 내가 거절을 하지 않아서인가, 내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가까워지고 싶어서.

    오늘은 술을 마시고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불편할 수 있지만 크게 내키진 않았다. 뭐 남자들끼리 자는 건데! 갈아입을 옷이 있었지만 귀찮아서 청바지 차림으로 누웠다. 갑자기 지인이 나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인다.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들끼리 그런거를 따지는게 더 이상하잖아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끌어들임은 어느새 속박이 되었고 나는 무언가 공포를 느꼈다. 이건 너무나도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탈출하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상대의 팔다리가 압도적인 힘으로 나를 조여온다. 나는 속박당한 채 상대방의 근육이 불끈거리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이후 뒤에서 인지하기 싫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촉감이, 거대하고 흉측하게 생긴 남성기가 내 바지 너머 느껴진다. 그 상황에서 나는 철저한 목적이자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나의 몸이 그저 타인의 유희를 위해 소비된다는 허무함이 나를 덮쳐왔다.

    내가 진지하게 정색을 하자 지인은 바로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하나의 장난, 아니면 형제애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인가.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장난 중 하나인가 그것이. 그 욕정의 대상이 나라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남성성의 본능, 폭력성, 확장성, 공격성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 장소에선 나또한 남자였다. 내가 가면을 쓰고 한 발언들이 끝없는 욕정과 폭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나서야 인지한 것이다. 나의 본능이 혐오스러웠다. 내 몸이 혐오스러웠다. 너무나도 도망가고 싶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가까웠지만, 어느새 돌아보니 그는 저 멀리 가버린 듯 한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능동성으로 치장된 공격성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남성성을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단어에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그 단어들이 내포하는 폭력성은 나를 향하는 것 같았고, 극도로 분열되고 부족화된 대한민국에서 집단들은 그들만의 극단을 단어를 매개로 표현하고 있었다.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성에 대한 환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여성성하면 생각나는 순수함, 수동성조차 남성성의 연장이다. 남성들의 페티시를 충족하기 위한 틀에 여성성을 가두는 또 하나의 억압성과 폭력성이다. 인간은 본능과 욕구의 동물이고, 욕구는 대개 아름답지 않다. 내가 여자가 아니기에 여자가 가지는 욕구를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욕구가 존재하고 그곳은 통상적인 여성상과 거리가 먼, 지극히 동물적이고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만 헤아린다.

    나는 중간지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여성성을 지향했다. 한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을 지향하면 중간이라도 가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나를 지배했던 어떤 본능과 선천적인 기질에서의 탈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떠한 설명을 붙이던, 그것은 구구절절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2/25

    선우를 만나 성수동에서 놀았다. 내 가장 가까웠던 친구. 우리 사이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사이엔 약 3년의 시간과 한국과 미국이라는, 군대와 사회라는 공간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즐거웠고 편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력에 끌리는 거야. 그것은 시공간이 끊어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점점 커지는 거리감을 무시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감과 함께 다가온다.


    12/27

    주환이를 만났다. 아직도 편하고 친근하지만, 마찬가지로 시간은 우리 사이에 꽤나 큰 간극을 만들어낸 듯 하다.


    12/28

    과 사람들과 방어를 먹었다. 사람들에게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그 공격성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닌 것 같아.


    12/30

    비행체 프로젝트를 같이 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한 학기동안 치열하게 함께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술자리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사투였다.

    이곳 또한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봐.


    1/1

    가장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모두가 정말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었고, 그것은 거리를 내포한다.

    이곳 또한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봐.


    1/2

    후배들과 밥약을 했다.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기회였다. 천문학과 친구들은 대체로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 만나는 친구들은 더더욱 그러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 반응을 들어보고 싶었다. 퍼즐 조각처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까지 가졌다.

    그곳에서 나는 남성성이 내포한 폭력성과 사회의 고정관념과 시선, 압박 등을 이야기 했다. 나는 최종적으로 중성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기반하여 정말 다양한 주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 후배에게 ‘현아 너가 나보다 더 여자같아‘ 라는 말을 들었고, 그것은 정말 강렬한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내 본능과 기질에 대한 무죄 판결이었고, 내가 남성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는 증표였다. 순간 내가 여성성에 온전히 속할수도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경계의 시선 또한 느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이종의 등장에 불편함이나 흥미로움, 거리감을 표출한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반응이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도 속하지 못하였지만, 내가 사회적으로 불편한 단계, 즉 남성성을 탈피해 어떤 중간 지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검증받았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1/4

    동기들이랑 마크를 했다! 서버를 열어서 건축을 하는 날이었다. 늦게 들어와 맵을 둘러보니 동기들은 이미 자신만의 집터를 잡아둔 듯 하다.

    나 또한 집을 만들기 위해 집터를 모색하던 중 벚꽃 바이옴을 발견했다. 초목에 수놓아진 벚꽃들, 떨어지는 연분홍 입자들, 꽂이 핀 벚나무와 평화로움, 따뜻함. 그곳의 모든 분위기가 나의 이상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곳에 속하고 싶었다. 벚나무를 심고, 등불과 모닥불을 만들고, 양털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후 텐트를 만들어 나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안식처 내부에 있는 내가 좋았고, 그것을 만든 내가 좋았다.

    그것은 나에게는 나의 도피처, 여성성에 속하기 위한 가벼운 발걸음이었지만, 누구에게는 여성성을 향한 남성성의 침략으로 느낄수도 있었다.


    1/5

    그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약간 느껴지긴 했지만,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성성에서 도망친 내가 피신할 곳은 여성성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행동을 다듬는다면, 나의 기질을 조금만 더 죽여본다면 동화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교정했다.


    1/6

    동생의 입대식을 따라갔다. 연병장에 질서있게 나열된 군인들, 우레같은 함성과 절도있는 경례. 그것이 공격성의 물리적인 표출, 정복과 굴복시킴, 군대의 목적. 남성성에서의 탈피를 다시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1/11

    진짜 난 왜 이럴까.


    1/12

    인생이 비참해진다. 내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싫어진다.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들어간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그들과 교류를 하면 할수록 나와 그들과의 괴리감, 그들과 나의 선천적인 차이가 더욱 부각된다. 나는 남성성이 싫어서 도망쳤지만, 내가 남자이기에 결코 여성성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지향하고 행동을 모방하는 것은 불쾌함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제일 끔찍한 사실은 내가 침범한 여성성의 영역에서, 내가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인지, 욕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나는 후자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세뇌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남성성이 싫어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의 시선은 다르게 느껴지고,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더러운 변태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내 몸이 너무나도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의 제 1원인, 공격성과 정복의 상징은 내 시선을 내려다보면 항상 추잡하게 존재했다.

    이 괴리감, 저들과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괴리감을 버틸 수 없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여성성에 대한 도전이자 침입, 남성성의 침략과 관통, 더러운 유린이란 생각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나는 남자였고, 그것은 항상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미지와 동경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고, 근접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끝내 보게 된 것은 아직도 아득히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태양과 내 날개의 엉성한 밀랍칠, 추락하며 한없이 멀어지는 내 모습 뿐이었다.

    난 이곳에 절대 속할 수 없다.


    상호 배타적인 두 집합의 교집합에 속한다는 것은 속한다는 것일까?


    1/14

    동기들과 찜질방을 갔다.

    외력만이 느껴진다.

    이곳에 속하지 않음을 느낀다.


    1/15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그들의 대화에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분위기를 망칠 생각은 없었기에 가면을 써 연기를 시작했다. 너무 과했나? 그들은 나에게서 이중성을 포착한 듯 하다.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도망쳤다.


    1/17

    동아리 후배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역시나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1/18

    나에게서 이득을 얻기 위해 나의 더러운 이중성을 다들 참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내가 만들어낸 그 시선은 내가 스와에 있는 모든 시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빨리 세미나를 정리하고 모든 것을 끝낼거야.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야.


    1/19

    스와 인수인계를 대부분 끝냈다. 회의장에 들어가 엎드려 잤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해방감을 느낀다.

    마침내 나는 스와에 속하지 않는다.


    1/20

    레슨쌤이 나와의 수업을 까먹으셨다. 빈 연습실에서 기타를 마음껏 치며 존재하지 않음을, 해방감을 느꼈다.

    내 앞에 주어진 일을 얼추 다 마무리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저 멀리 미뤄두었다. 엄마가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는지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형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방인이 된 기분을 힘껏 느낀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엄마와 형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렴풋이 들린다. 방 천장에 밧줄을 매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투영이 혐오스러웠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한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를 묶어주던 힘이 사라지자, 우리들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표류한다.

    내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 끝없이 후퇴하여 이제 마지막 저항선만을 남겨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흘러가 멀어진다고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자신이 생겼다.

    그것을 바라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1/22

    선우를 만났다. 한달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내가 달라진 것인가. 나에게는 이제 균열만 보인다.


    1/29

    선우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분명히 즐거웠고 편했다. 하지만 나에겐 더 넓어지는 균열만이 보였다. 끊어지지 않을 거 같던 인연의 실은 서서히 풀려 이제 마지막 매듭만을 남겨둔 듯 하다.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앞에 펼쳐져있는 몇십년의 무게에 짓눌려 막막해져 정신이 아득해진다.

    선우는 상냥하게 인사하며 문 밖을 표류해 나간다. 나는 그것을 잡아둘 힘이 없었다.


    2/1

    오늘은 동기들과 술을 마시는 날이다.

    무슨 기대를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멀어짐을 묵묵히 직면할 각오도 했지만, 일말의 희망 또한 남겨놨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장소에 존재해야했기에 존재했다.

    나는 동기와 후배 사이에 앉아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놈의 남성성, 그들에게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내가 그토록 피해다녔던 그것들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면을 쓰면 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무심코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내포된 폭력성이 양 옆에서 나를 압박해왔고, 내가 탈출할 공간은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도망쳐 나가 심호흡을 했다. 하늘에서 잿빛 눈이 떨어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린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균열이 갈 줄은 몰랐고,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체념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지막 순간을 몸소 느끼는 것.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내려가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대화의 흐름을 관조하며 항상 느껴왔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사실들을 느끼고 끌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수요이자 공급이었다. 각자의 결핍이 있었고, 서로에게서 그것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목적이자 종착지가 아닌 그저 중간 역,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자 최소한의 보험. 약속된 가면 무도회. 책임 없는 쾌락. 그 사실이 화가 나고 싫었다. 그것은 나의 이상과는 너무나도 멀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양 옆에서, 앞에서 느껴지는 무력함, 패배감, 타협과 포기, 현실 순응과 안주함, 그것에서 기인하는 결핍과 후회 또는 자기합리화, 그럼에도 그 자리에 있는 나. 그곳에 있는 모든 분위기, 매 초가 싫어졌다.


    나의 소중한 동기들아, 친구들아.

    한 달이 지났어.

    우리는 서로의 인력만으로 그 장소에 모인 것일까.

    그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일지도 몰라. 안정감이나 즐거움을 위해 그 불편한 사실을 잠시 뒤로 미뤄둔 걸지도 몰라.

    모두가 답을 알고 있잖아.

    답은 아니라는 거야.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야


    이제 나는 혼자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사회는 이제 저 멀리서 일어나는 잡음에 불과했다. 나때문에 분위기가 박살나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복합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통제적인 생각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사람들과 멀어지는 이유마저도 자신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싶다는 것이다. 타인의 배려를 이용하여 사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자기 혐오가 더 심해진다.


    신촌역에서 헤어졌다. 뒤돌아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덤덤한 생각, 2호선 내선과 외선의 교차와 역행과 표류, 멀어짐, 흘러내림. 시간은 흐른다. 같은 방향의 열차를 탄 친구 또한 먼저 내린다. 마찬가지로 흘려보낸다.

    의자에 앉아 반대편 창을 바라보니,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규격화된 의자에 실려 가는 내 모습. 그리고 그 주위를 빼곡히 채운 사람들. 사람들이 이렇게나 가까운데, 정작 손을 뻗어 그들에게 닿을 순 없었다. 한 의자에 두 명이 앉을 순 없었다.

    방에 들어가 노래를 틀었다. 나는 그들이 저만치 떨어져있음을 느꼈다. 그들에게 투영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비어 보였다.

    어딘가 소속되기 위해 수많은 자기 자신들을 선별하고 조합하여 억지로 흉내내려는 저 모습. 자신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기계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빈 껍데기. 저것은 타인으로 자신을 채우려 하면 그대로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애써 무시하려는 것인가.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저 눈빛들을 보라. 저 멀리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나를 조소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사회 부적응자, 정신병자, 도파민 중독자, 자의식 과잉자, 무심한 아이, 중성이 되고 싶은 친구, 부담스러운 친구, 특이한 친구, 이상한 친구, 철이 덜 든 아이, 그 외의 수많은 나의 파편들, 내 갖잖은 머리로 의도했다고 생각한 나의 모습들이 그들의 사고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조소들.

    그들이 나에게 외친다! 그것이 사회이고 인생이라고, 인생은 타협과 포기함의 연속이라고,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타인에 맞춰 자신을 깎아감이 성숙함이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성숙해진다면 난 어른이 되기 싫다! 평생 어리석게, 맹목적으로 내 이상만을 좇아 살아갈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생 방황을 할지라도 난 온전한 나로써 속할 것이다. 확고한 지향점과 함께 있는 힘껏 방황할 것이다. 아브락삭스에게 날아가기 위해 응당 알을 깰 것이다!

    필히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 지쳤다. 타인을 규정짓는 것에 지쳤다. 타인에게 규정당함에 지쳤다. 속하지 않음에 지쳤다. 속하려 함에 지쳤다. 가면놀이에 지쳤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지쳤다. 저 시선들을 피해 도망가고 싶다.

    나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다. 아니,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 두 달? 방학이 너무나도 짧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나에게 방학은 찾아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꼭 쉬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하지만 쉬어야 한다. 꼭 쉬어야 한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존재를 망각하게 되면, 그제서야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는 번뇌에서, 나를 규정하는 제약들에게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잠깐이라도 사라지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미 그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블로그에 쓰고 있다. 나는 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사라짐인지, 아니면 사라짐에 대한 주위의 시선인지.

    이 글을 기여코 사회에 내보내려 했던 것은 내가 겁쟁이처럼 도망만 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힘들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소외감의 깊은 늪에 빠진 나를 구원해줄 이름모를 손길을 편하게 잡으려고 하는 거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선, 소통하기 위해선 내 자신을 깎아내 가면을 써야 한다. 거기서부터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그저 표면에 비친 상일 뿐이고, 그것은 거짓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 있다. 적절한 가면만 쓴다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표면적으로 즐거운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원의 손길들은 항상 나를 향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저 일어나지 않아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세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거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속할 곳이 존재하는지,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들의 형상은 저 멀리서 아른거리기만 한다.

  • 반짝이다, 떨어져라

    반짝이다, 떨어져라

    오늘은 집에 돌아온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

    수없이 그래왔고, 그래온 지극히 일상적이었던 날

    그러나 나에게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온 날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토요일에 누나의 결혼식이 있었기에

    결혼식 준비를 위해 목요일 밤 늦게 집에 돌아와야 했다

    그 날 저녁엔 동기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너무나도 안정되어

    지루해지기 시작한 나의 삶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고 싶었고

    동기들과 대화하며

    나의 결핍과 고통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마음은 다시 요동쳤다

    돌아온 집에선 음악을 들었다

    문득 내가 듣는 노래들이 단조로워 보여

    즐겨찾는 노래를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노래들로 채웠다

    밤새도록 Radiohead의 노래를 들으며

    새벽의 전율을 느꼈다

    그 다음날 낮엔 과제를 하고

    저녁엔 결혼식 때 신을 구두를 사러 갔다

    문득 기타가 너무 치고 싶어 집 앞 연습실을 예약해

    자정이 될 때 까지 기타를 쳤다

    작디 작은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기타 소리를 항상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엔 결혼식에 갔다

    누나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잔잔하지만 견고하게 기댈 수 있다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외로이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과 대비되어 너무나도 부러웠다

    집에 돌아와 장학생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연사님께서는 강조하셨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하세요

    진로와 관련된 강연이었기에

    연사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달랐겠지만

    나는 이렇게 느꼈다

    학업 과제에 밀려 항상 하지 못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자

    그래서 오늘 아침엔 게임만 했고

    오늘 저녁엔 음악만 들었다

    수많은 음악을 듣던 중

    파란노을을 찾았고 매료됐다

    파란노을의 모든 음악을 들었다

    정제되지 않은 소리와 가사

    그 소리는 내 마음 속 요동침을 증폭시켜

    실체화하고 불태우기 시작했다

    만약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그 작가는 분명 나의 지난 3일을 지금을 위해

    쌓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순간의 나는 필연이기에

    마다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일상으로 위장하여 나에게 다가온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몽환적이었던

    이 시간의 감상들을 풀어냈다

    나의 꿈 이상 동심으로 살아가고 싶다

    기타를 잘 치고 싶다 밴드를 하고 싶다

    작곡도 해보고 싶다 소설도 써보고 싶다

    그렇게 하기엔 나는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분명히 초라하고 비웃음 멸시 핀잔을 받겠지만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고 싶다

    불완전한 나로써 사랑받고 싶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런 세상을 한없이 사랑하고 싶다

    내 세상이 완전무결하고 싶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세상살이와 멀어져 가는

    내 자신이 너무나 역겨워서

    나의 비참한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나의 수많은 실패를

    누구도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내 이상이 언젠간 반드시 깨질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빛내보고 싶다

    원없이 반짝이다

    떨어지고 싶다

  • Dear Diary

    Dear Diary


    일기에게

    오늘 큰 결심을 했어.


    나는 정말 과분한 기회를 얻었다. 수험생 때 피나는 노력을 했다곤 생각하지만, 연세대학교에 합격한 것은 순수 행운이었다.

    2023년 1월 31일,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고, 이내 혼자 방에 남겨졌다. 주위의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 비현실적이었다. 그것들의 물성은 동일했지만, 내가 달라지니 그것들도 달라졌고, 그 이질감은 내 인지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어지러워서 침대로 몸을 던지니 천장이 보였다. 천장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무 기뻤고, 믿기지 않았다. 천문우주학과에 합격했다. 난 우주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매료되어 외국 웹 사이트를 뒤져가며 천문학 지식을 습득했고, 6학년 때 Falcon 9 로켓의 첫 해상 착륙 성공을 생방송으로 보았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항상 천문학자였고, 고등학교를 소프트웨어 특성화고를 가 잠시 그 꿈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원서 접수 기간 소프트웨어학과를 찾아 끝없이 스크롤할 때 갑작스레 나타난 천문우주학과의 이름에 잊어버렸던 열정이 다시 불타올라 지원한 것이고, 합격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자기합리화를 하면서까지 천문학을 좋아해야만 했다. 그러나 믿고 싶은 사실과, 내 내면이 전달하는 사실은 너무나도 어긋났다.

    나는 천문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학생 때 게임만 한 나에게 꿈은 없었고, 희미한 지향점마저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반고를 갈 성적이 안되어 떠밀려온 특성화고에선 과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 점수가 예상보다 잘 나와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를 지원한 것이다. 나는 천문학을 자연’과학’으로 바라보는 눈이 없었고, 그런 내가 천문우주학과에서 수학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남은 1월은 너무나도 짧았다.


    새내기의 2월은 새로운 환경과의 첫 조우다.

    아마도 캠퍼스 투어를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처음 입는 청바지와 어설프게 구겨진 자켓을 입고 집을 나섰다. 긴장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며 발걸음을 뗀 나를 가득 채운 불안감은 어머니의 당부가 들어올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대학 동기들을 조우하기 두려웠다.

    수능 때 과학탐구를 보지 않아 이학 지식 없이 이과대에 들어왔고, 15번을 찍어 맞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수학 1등급을 수능에서 받았고, 특성화고 특별 전형으로 내 성적에 과분한 대학에 지원할 용기가 생겼고, 운 좋게 정원 1명 안에 들었고… 난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다.

    2호선 신촌역에서 내려 연세대 삼거리에 도착하니 저 멀리 천문학과 과기를 들고있는 사람과, 어설픈 패션으로 깃발 주변을 선회하는 여러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내 동기들이겠구나. 보행자 신호가 켜지는 1분 남짓한 시간동안 가능한 대화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았다.

    갓 사회로 나온 대학교 신입생들의 사고는 고등학교 3학년에 멈춰있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 과정에서 규격화된 사고 상에서 나올 수 있는 ‘스몰 토크’ 주제는 매우 한정돼있었다.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나요? 수시세요, 정시세요? 와 같은 질문은 깃발 주변의 낯선 이들과의 공통점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한 해당 질문을 물어보는 그들 사이에선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확실히 공유하고 있는 은은한 성취감 또는 아쉬움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그 장소에서는, 나 뿐이었다.

    ‘ 치열한 경쟁을 거쳐 목표를 이룬 자들이야. 그들은 나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을거고, 특성화고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나는 이 학교에 들어올 정량적인 수준이 아니었지. 내가 만약에 그들이었다면 특성화고 출신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노력의 정도를 비교할 거야. 나조차 내 출신에 대해 떳떳하지 않은데, 그들이 알게 된다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거짓말은 언젠간 들통나. 하지만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들이 나를 무시할까봐 무서워… ‘

    보행자 신호가 켜졌다.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깃발을 향해 걸어갔다. 실루엣이 커져 형상이 되고 그들과 나는 서로를 인식하였다.

    나와 그들의 ‘스몰 토크’ 시간은 일종의 청문회이자 러시안 룰렛이었다. 나의 차례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무조건 실탄이 들어있을 것이고, 내 입에서 ‘특성화고’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두려웠다. 대화의 총구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향했고, 결국 거짓말을 하였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불안감에 도망쳐 나왔지만, 그곳에도 동기가 있었다. 나와 내리는 역이 같아 신촌에서 잠실로 가는 약 35분간의 2호선 전철을 단 둘이 가게 되었다. 다수에게 분산되었던 대화의 초점이 첨예해져 대화를 구체화시켰고, 거짓말 또한 구체화되며 전철을 내릴 즈음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었다. 이후 역에서 내려 멀어지는 낯선 동기의 뒷모습을 보며 죄의식을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결정 중 하나였다. 그 때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했더라면, 훨씬 더 일찍 떳떳하게 대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 날의 기억은 다가올 일 년을 옭아매는 구속구가 되었다.


    대학교 첫 학기가 기억나? 겁많고 소심했던 나는 결국 대학에 들어오기 전 정말 큰 실수를 했어. 그 실수는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개강을 맞은 내가 사회로 나가지 못하도록 옥죄었어.

    나는 동기들을 피해다녔어. 동기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내 자신이 만들어낸 두려움으로 나는 혼자 도망쳐 기숙사 방으로 들어갔어. 내 심정을 누구에게던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누구나 동일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할 자신감이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노트를 펴내 마음을 토해냈어. 흰색 종이 위에 분노, 슬픔, 두려움, 외로움이 담긴 글씨가 폭풍처럼 휘갈겨 나왔고 나의 맘은 한층 편해졌어. 그 다음날, 노트에는 한층 더 밝은 기대와 열정이 더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졌어. 그리고 그 다음날은 학업과 인간관계 대한 걱정이, 그 다음날, 다다음날에는 내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세상에 대한 글을 써내려갔어.

    그것이 층층히 쌓여가 너가 됐어.


    나는 나다. 무의식에서 기원해 망각으로 흐르는 비정제된 사유의 흐름을 길어 종이 위에 실체화한, 방황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나였다. 나를 통해 나는 가장 원초적인 자신을 마주볼 수 있었고, 내 고통의 본질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너와 이야기하며 한 가지 결심을 하였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과탑을 해 동기들 앞에 떳떳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자신없는 물리부터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익혀나가기로 결심했어.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배운 일반물리학실험 책을 펼쳤어. 하지만 물리 교재에서 제시하는 사고의 흐름은 너무 낯설어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 교재의 각 장, 각 장이 너무 높은 고비였고,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푸는 동기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지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내 자신감은 더더욱 바닥을 쳤어. 그런 나를 구제해준 아주 고마운 과목이 있는데, 정말 의외지만 화학이야.

    화학은 물리와 달리 암기 요소가 대부분이기에 시간을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었어. 이때 즈음 동기들과 화학 스터디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은 동기들에게 나를 보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자 증명의 장이었어. 그들이 나를 공부 잘하는 사람, 학문에 열의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를, 나중에 그들에게 내 출신을 밝혔을 때, 정말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랐어. 정말 이기적이지만, 새내기의 실수라고 생각해줘.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아. 그러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니겠어?

    스터디를 같이 진행한 동기들은 정말 지적이었고 배울 점이 너무 많았어. 동기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 들으며 그것이 도출되기까지 얼마나 깊은 지식과 사유가 관여했을까를 가늠해보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어. 그들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닮고 싶었어.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학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 하지만 그러기에,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스스로 도망치려고 했어. 그들과 나는 확실히 대비되었고 나는 이러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었어. 그러기에 난 공부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되었어.

    수험생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 1교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폐관을 알리는 노래가 나올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어. 기숙사에 돌아온 후엔 독서를 하고 일기를 쓰다가 잠들었어. 핸드폰을 보지 않기 위해 시작한 루틴이었지만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지. 독서를 통해 새로운 통찰이나 직관을 얻고, 그것을 너와 논의하며 내 인지를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구체화되는 너는 다른 사람 같았고, 너를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어. 덕분에 정말 단조로웠던 내 일상이 외롭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 혼잣말이 는다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나가다보니 중간고사가 다가왔어. 미적벡 시험은 수능보다 떨렸던 것 같아.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일상을 반복해나가니까 어느새 기말고사가 끝나있었고 방학이 시작됐지.

    내 대학교 첫 학기 학점은 4.3/4.3이었어. 엄밀히 말하면 일물실을 드롭했기에 완전 과탑은 아니었지만, 내게 과탑은 절실했기에 애써 무시했어. 나는 과탑을 했고, 내가 이곳에서 공부할 자격을 증명한거야. 나 자신한테 떳떳해졌기에, 타인에게도 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고 방학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내 목적을 다했지만, 어느새 내가 나의 목적이 되어있었다. 한 학기동안 타인과의 교류 없이 나는 나의 인지를 아래로 넓혔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방학이 끝날 때 까지도 지속되었다. 특이점에 당도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해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내가, 넘치는 자기애를 기반으로 만물을 이해하고 만인을 사랑하려고 하는 내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런 나에게 매료되었다. 내가 정의한 공리의 조합으로 세상 만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확증 편향을 인지하고 사고를 교정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나로부터 완성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나를 닮고 싶었고 잃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 또한 사고의 과적합이자 확증 편향이었다. 부끄럽지만 필요했던 과정이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가지고 2학기를 맞았어.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동기들 덕분에 과 생활에 점점 더 적응해나갔어. 예상대로 타인과의 교류는 너무 즐거웠고 덕분에 나에게서 눈을 돌려 타인을 보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와의 대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 어느새 너는 내 사고의 가장 중요한 축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르소나가 되어있었어. 하지만 너는 점점 더 무서워졌어. 가장 깊은 나를 마주볼 자신이 생길 수록 일기 위에는 단 하나의 정제 과정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생각이, 본질적인 충동이 쓰여졌어. 어제의 너를 오늘의 내가 무서워 하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턴 난 일기를 쓰고 다시 읽어보지 않았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어. 나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 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시선을 돌려 그 조각을 사람들에게서 찾기 시작했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했지만 유희적, 표면적인 대화는 너의 빈자리만 더 강조했고, 그것을 채우려면 너를 보여야 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가장 완벽했던 너가 어느새 가장 부끄러운 내가 되었기 때문이야.

    역설적으로, 그러기에 너를 내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사유하는 인간이기 전에 동물이기에 사람들은 사회에 나오기 위해 여러 겹의 가면을 썼을 거야. 그들이 인지하던 인지하지 못하던 각자 자기만의 “너” 를 억누르며 사회에 맞춰가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이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이자, 모든 행동의 기저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숨기고 있는 것일거야.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나서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진다면, 서로의 눈 너머를 마주볼 수 있다면?

    이것이 진짜 나인데, 이런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이었었지만, 아직은 부족했어. 기회는 많았지만 항상 놓쳤고, 그렇게 내 1학년이 끝났어.


    2학년이 시작됐어. 신촌에는 과방이 있었고 모두가 동일한 전공을 들었어. 전공 수업이 끝나면 과방으로 모여 수다를 떨다 헤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더이상 표면적이지 않았고 내 추측은 확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어. 모든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열어주길, 상대방이 용기를 내기를 그렇게 바라고 있는거야.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한 번 기회가 왔고, 이번엔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기에 시도해봤어. 가면을 벗어던지고 대화를 깊게 끌어내렸어.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본성을 목도했지. 우리의 생각은 근원부터 너무나도 달라서 표면만 봐서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원초적인 질감은 동일했고, 난 그것이 좋았어. 우리의 인간됨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근원에서 솟아오르는 행복을 느꼈고, 우리라면 서로의 가장 깊은 내면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한 거리가 생겼고,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것이 껄끄러워졌어. 가장 가까운 생각까지 끌어올렸는데 왜 멀어진거지? 이러면 안되는데, 내 예상과 맞지 않은데.


    내겐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나의 이상향이자 우리의 이상향이다. 그것을 내보인 방식이, 상황이, 아니면 우리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기에 계속 시행착오를 거쳤다. 내 행동을 미세 조정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나와 우리의 조합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고, 몇몇 결과는 되돌릴 수 없었다. 11월의 어느 날에 나는 상대에게 정신에 문제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 다음주엔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을 잃을 뻔했다.

    더이상 누구와도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표면만을 바라봐야만 해도, 그 가까움이 너무나도 적당해야만 해도 괜찮았다. 내 이상과 멀어지는 길이지만, 항상 현실은 이상과의 타협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나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떠나 나를 사회에 맞게 다시 포장했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그들과 멀어지기 싫었기에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어. 원래 마케팅에서도 브랜딩보다 리브랜딩이 더 어려운거잖아? 더군다나 리브랜딩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니까,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좀 부끄럽긴 한데, 지금 돌아보니 나는 생각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사실은 생각이 깊은, 그니까 반전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거 같아.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만의 진심이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어야 했어.

    내 사고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연습했어. 처음엔 로봇같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더라. 한두달이 지나니 사회성이 늘었다라는 평가를 듣기 시작했어. 매일매일을 평범하지만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우리들은 더더욱 가까워졌어. 잔잔히 흐르는 시간은 내게 안정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나는 이대로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을 억누른다고 해소할 수 있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로써 살아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이렇게까지 나를 억눌러가며 살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나의 모든 것을 아량껏 이해해줄 누군가가 너무나도 필요했어.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넓히며 누군가를 계속 찾아다녔어. 이상적인,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야 했기에, 우리들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어. 어느새 우리들의 교류는 너무나도 얕아져 나를 끝없이 외로움에 매말라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필사적이게 되었어. 극도로 불안한 마음은 약간의 기폭제만 있으면 터져나와 최악의 실수들로 이어졌고,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으로 나를 더더욱 가두는 악순환이 이어졌어.


    2025년 10월 초입의 어느날, 나는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방을 나서 열심히 외로워하다가 밤 늦게 돌아왔어. 불이 꺼진 기숙사 방에는 나와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만 있었어. 책상 조명을 켜니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물체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그것과 대비되는 새까만 노트가 있었어. 그것은 마치 블랙홀처럼 위에서 쏟아져내리는 빛과 내 시선을 빨아들였고 난 어느새 그것을 잡고 있었어. 그것은 거의 일 년 동안 꺼내보지 않은 너였어. 나는 너를 펼쳐 내가 걸어온 길을 처음부터 천천히 따라가보았지.

    너는 자기 혐오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고 내 이상이 되었어. 그러기에 나는 너를 나와 세상에 투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모든 시도에서도 나는 완전하지 못했어.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외로웠어. 나는 그저 내 진심을 전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 당시 나에게 너는 유일한 지향점이었어. 너의 찬란한 빛만이 내가 완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찾아 헤맸어. 너는 무결했기에 문제는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있어야 했던 거야.

    그러나 올해 너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자 너에게 가려져있던 빛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 빛들은 너무나도 다원적이고 옅게 산개되어있어 나로 하여금 외로움을 느끼게 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사고를 너와는 다른 축으로 넓혔어. 그리고 그곳에 올라 너를 바라봄으로써,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어.

    내가 지금까지 진솔하고자 했던 것은 경솔함이었고,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타인에겐 한없이 불쾌하고 적나라한 마찰음이었어. 가장 그대로의 생각이 가장 진실된 생각이 아니었던 거야. 진심은 생각의 흐름에서 그대로 길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정제하고 정련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인 거지.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도 마찬가지기에 타인에게도 그런 여유를 만들어줘야 해. 우리의 세심한 거리둚이, 오히려 우리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거지.

    내 결핍의 원인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게 나뉘어 있었고, 해결책 또한 서로에게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거야. 내가 방황했다고 생각한 길이 가장 곧은 길이었던 거야.

    즉시 행동해야 했어. 오늘의 깨달음이 수없이 많았던 새벽의 감상 중 하나로써 흘러내려가면 안됐기 때문에, 미래의 내가 이것 또한 수많은 시행 착오 중 하나라 생각할 지라도 해야만 했어. 밤을 새면서 블로그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만들었어. 그 다음날부턴 오래 전 일기들을 다시 꺼내 처음부터 읽으며 다듬고 다듬어 글로 옮겼어. 글을 마무리 지을 때 즈음엔 10월이 끝나가고 있었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일거라 믿어.

    이 글은 나의 일기에게 다시, 그리고 아직 모르는 누군가에게 쓰는 첫 글이야.


    일기에게

    오늘 큰 결심을 했어.
    다시 한 번 세상에 내 진심을 전해볼거야.

    하지만 이번엔 내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나의 진정한 마음를 전할거야.
    가장 본질적이지만 순수한 생각만을 이곳에 하나하나 포개 올려놓을 거야.

    내 진심이 쌓이고 쌓여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누군가에게

    닿을 때까지.


    2025년 10월,

    기숙사 책상 앞에서
    가을과 함께 펼치고
    가을과 함께 끝맺은

    너에게








    p.s
    항상 정보 전달만을 위한 글만을 쓰다가 문학적인 글을 써보고 싶어 노력을 해봤으나,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문학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늘어간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