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어떤 천사에게 세 가지 질문을 주셨다.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는 지상으로 내려가 인간과 함께 살며,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았다.
사람 속엔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육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결핍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나는 온전한 나로서 속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가
왜 현재의 나는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내가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가면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타인과의 불협화음이 보이지만, 그 사람의 흠결이 보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을 때 가면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 사람들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에 가면을 쓰는 고통을 감내하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1년도 채 안됐다. “나는 나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기준도 매우 엄격해”. “나의 이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내 이상형은 나보다 항상 앞서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각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바로 정이 떨어진다”.
나는 분명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왜 사람에게 흠결이 보이면 거부감이 들고 싫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애착을 원했다.
사랑과 애착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사랑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축복해주는 마음이다. 인간 본질에 내재된 근원적인 선이다.
하지만 애착은 조건이 붙는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달콤해보이는 이름의 이면엔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는 통제 욕구가 존재한다. 그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온전히 속함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애착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타인을 통제하려 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있는 한 집단은 온전히 속함의 속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온전히 속하기 위해선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인지하니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사람들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 같다. 몇몇 얼굴들이 지나간다.
나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나와 충분히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방황하였지만, 그들은 내 존재를 사랑했기에 항상 곁에 남아주었다.
그 수고를 인지하지도, 감사해하지도 못할 망정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일방적으로 도망치는 것은 너무나도 잘못되었다.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기 위해선 우선 타인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이상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동기들에게, 가족들에게, 나와 함께 있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에게 준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너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어. 너희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싶어.
풀리지 않은 것들이 아직 많다.
타인을 어떻게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타인의 흠결에 어떻게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흠결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는 가면을 써서만 해결할 수 있는가.
타인을 향한 사랑과 자아의 소실 중 어떤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내가 온전히 속할 수 없는 집단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나 하나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방학은 충분히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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