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나를 기워내 사회에 속하였다.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12/18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는 너무 즐거웠다! 마음 맞는 동기들이 있었고, 동아리에 맘껏 속하며, 스쳐 지나갔다고 여긴 인연들과 깊은 교류를 하였다.
오늘은 동기들이랑 종강 파티를 하는 날이다! 함께 모여 보드게임 카페에 가고, 술을 마셨다. 그 순간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말 즐거웠다. 그러다가, 술기운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화자에서 청자가 되기로 하였다. 마침 구석 자리였기에 훌룡한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오가는 대화에만 집중해보았고, 그러자 부드럽게 흘러가는 맥락 속 불연속점, 다들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에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력만으로 그 장소에 모이게 된걸까. 아니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증명하고 싶었다. 방학은 충분히 길었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다.
12/22
지인을 만났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에 가면을 만들어 썼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공통점마저 사라지니까.
그 가면은 남성성의 가면이었다. 그 가면을 쓴다는 것은 본능에 자아를 의탁하는 오묘한 감각을 동반한다. 맥락 없이 오가는 섹드립에 무감각해지고, 타인을 객체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남고 출신이라 어느정도 템포를 따라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잘못됨을 느껴간다. 내가 거절을 하지 않아서인가, 내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가까워지고 싶어서.
오늘은 술을 마시고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불편할 수 있지만 크게 내키진 않았다. 뭐 남자들끼리 자는 건데! 갈아입을 옷이 있었지만 귀찮아서 청바지 차림으로 누웠다. 갑자기 지인이 나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인다.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들끼리 그런거를 따지는게 더 이상하잖아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끌어들임은 어느새 속박이 되었고 나는 무언가 공포를 느꼈다. 이건 너무나도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탈출하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상대의 팔다리가 압도적인 힘으로 나를 조여온다. 나는 속박당한 채 상대방의 근육이 불끈거리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이후 뒤에서 인지하기 싫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촉감이, 거대하고 흉측하게 생긴 남성기가 내 바지 너머 느껴진다. 그 상황에서 나는 철저한 목적이자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나의 몸이 그저 타인의 유희를 위해 소비된다는 허무함이 나를 덮쳐왔다.
내가 진지하게 정색을 하자 지인은 바로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하나의 장난, 아니면 형제애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인가.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장난 중 하나인가 그것이. 그 욕정의 대상이 나라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남성성의 본능, 폭력성, 확장성, 공격성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 장소에선 나또한 남자였다. 내가 가면을 쓰고 한 발언들이 끝없는 욕정과 폭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나서야 인지한 것이다. 나의 본능이 혐오스러웠다. 내 몸이 혐오스러웠다. 너무나도 도망가고 싶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가까웠지만, 어느새 돌아보니 그는 저 멀리 가버린 듯 한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능동성으로 치장된 공격성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남성성을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단어에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그 단어들이 내포하는 폭력성은 나를 향하는 것 같았고, 극도로 분열되고 부족화된 대한민국에서 집단들은 그들만의 극단을 단어를 매개로 표현하고 있었다.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성에 대한 환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여성성하면 생각나는 순수함, 수동성조차 남성성의 연장이다. 남성들의 페티시를 충족하기 위한 틀에 여성성을 가두는 또 하나의 억압성과 폭력성이다. 인간은 본능과 욕구의 동물이고, 욕구는 대개 아름답지 않다. 내가 여자가 아니기에 여자가 가지는 욕구를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욕구가 존재하고 그곳은 통상적인 여성상과 거리가 먼, 지극히 동물적이고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만 헤아린다.
나는 중간지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여성성을 지향했다. 한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을 지향하면 중간이라도 가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나를 지배했던 어떤 본능과 선천적인 기질에서의 탈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떠한 설명을 붙이던, 그것은 구구절절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2/25
선우를 만나 성수동에서 놀았다. 내 가장 가까웠던 친구. 우리 사이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사이엔 약 3년의 시간과 한국과 미국이라는, 군대와 사회라는 공간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즐거웠고 편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력에 끌리는 거야. 그것은 시공간이 끊어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점점 커지는 거리감을 무시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감과 함께 다가온다.
12/27
주환이를 만났다. 아직도 편하고 친근하지만, 마찬가지로 시간은 우리 사이에 꽤나 큰 간극을 만들어낸 듯 하다.
12/28
과 사람들과 방어를 먹었다. 사람들에게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그 공격성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닌 것 같아.
12/30
비행체 프로젝트를 같이 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한 학기동안 치열하게 함께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술자리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사투였다.
이곳 또한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봐.
1/1
가장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모두가 정말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었고, 그것은 거리를 내포한다.
이곳 또한 내가 속할 곳이 아닌가봐.
1/2
후배들과 밥약을 했다.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기회였다. 천문학과 친구들은 대체로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 만나는 친구들은 더더욱 그러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 반응을 들어보고 싶었다. 퍼즐 조각처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까지 가졌다.
그곳에서 나는 남성성이 내포한 폭력성과 사회의 고정관념과 시선, 압박 등을 이야기 했다. 나는 최종적으로 중성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기반하여 정말 다양한 주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 후배에게 ‘현아 너가 나보다 더 여자같아‘ 라는 말을 들었고, 그것은 정말 강렬한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내 본능과 기질에 대한 무죄 판결이었고, 내가 남성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는 증표였다. 순간 내가 여성성에 온전히 속할수도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경계의 시선 또한 느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이종의 등장에 불편함이나 흥미로움, 거리감을 표출한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반응이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도 속하지 못하였지만, 내가 사회적으로 불편한 단계, 즉 남성성을 탈피해 어떤 중간 지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검증받았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1/4
동기들이랑 마크를 했다! 서버를 열어서 건축을 하는 날이었다. 늦게 들어와 맵을 둘러보니 동기들은 이미 자신만의 집터를 잡아둔 듯 하다.
나 또한 집을 만들기 위해 집터를 모색하던 중 벚꽃 바이옴을 발견했다. 초목에 수놓아진 벚꽃들, 떨어지는 연분홍 입자들, 꽂이 핀 벚나무와 평화로움, 따뜻함. 그곳의 모든 분위기가 나의 이상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곳에 속하고 싶었다. 벚나무를 심고, 등불과 모닥불을 만들고, 양털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후 텐트를 만들어 나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안식처 내부에 있는 내가 좋았고, 그것을 만든 내가 좋았다.
그것은 나에게는 나의 도피처, 여성성에 속하기 위한 가벼운 발걸음이었지만, 누구에게는 여성성을 향한 남성성의 침략으로 느낄수도 있었다.
1/5
그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약간 느껴지긴 했지만,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성성에서 도망친 내가 피신할 곳은 여성성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행동을 다듬는다면, 나의 기질을 조금만 더 죽여본다면 동화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교정했다.
1/6
동생의 입대식을 따라갔다. 연병장에 질서있게 나열된 군인들, 우레같은 함성과 절도있는 경례. 그것이 공격성의 물리적인 표출, 정복과 굴복시킴, 군대의 목적. 남성성에서의 탈피를 다시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1/11
진짜 난 왜 이럴까.
1/12
인생이 비참해진다. 내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싫어진다.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들어간다.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그들과 교류를 하면 할수록 나와 그들과의 괴리감, 그들과 나의 선천적인 차이가 더욱 부각된다. 나는 남성성이 싫어서 도망쳤지만, 내가 남자이기에 결코 여성성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지향하고 행동을 모방하는 것은 불쾌함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제일 끔찍한 사실은 내가 침범한 여성성의 영역에서, 내가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인지, 욕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나는 후자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세뇌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남성성이 싫어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의 시선은 다르게 느껴지고,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더러운 변태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내 몸이 너무나도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의 제 1원인, 공격성과 정복의 상징은 내 시선을 내려다보면 항상 추잡하게 존재했다.
이 괴리감, 저들과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괴리감을 버틸 수 없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여성성에 대한 도전이자 침입, 남성성의 침략과 관통, 더러운 유린이란 생각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나는 남자였고, 그것은 항상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미지와 동경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고, 근접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끝내 보게 된 것은 아직도 아득히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태양과 내 날개의 엉성한 밀랍칠, 추락하며 한없이 멀어지는 내 모습 뿐이었다.
난 이곳에 절대 속할 수 없다.
상호 배타적인 두 집합의 교집합에 속한다는 것은 속한다는 것일까?
1/14
동기들과 찜질방을 갔다.
외력만이 느껴진다.
이곳에 속하지 않음을 느낀다.
1/15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그들의 대화에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분위기를 망칠 생각은 없었기에 가면을 써 연기를 시작했다. 너무 과했나? 그들은 나에게서 이중성을 포착한 듯 하다.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도망쳤다.
1/17
동아리 후배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역시나 내가 속할 곳이 아니다.
1/18
나에게서 이득을 얻기 위해 나의 더러운 이중성을 다들 참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내가 만들어낸 그 시선은 내가 스와에 있는 모든 시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빨리 세미나를 정리하고 모든 것을 끝낼거야.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야.
1/19
스와 인수인계를 대부분 끝냈다. 회의장에 들어가 엎드려 잤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해방감을 느낀다.
마침내 나는 스와에 속하지 않는다.
1/20
레슨쌤이 나와의 수업을 까먹으셨다. 빈 연습실에서 기타를 마음껏 치며 존재하지 않음을, 해방감을 느꼈다.
내 앞에 주어진 일을 얼추 다 마무리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저 멀리 미뤄두었다. 엄마가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는지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형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방인이 된 기분을 힘껏 느낀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엄마와 형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렴풋이 들린다. 방 천장에 밧줄을 매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투영이 혐오스러웠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한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를 묶어주던 힘이 사라지자, 우리들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표류한다.
내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 끝없이 후퇴하여 이제 마지막 저항선만을 남겨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흘러가 멀어진다고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자신이 생겼다.
그것을 바라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1/22
선우를 만났다. 한달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내가 달라진 것인가. 나에게는 이제 균열만 보인다.
1/29
선우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분명히 즐거웠고 편했다. 하지만 나에겐 더 넓어지는 균열만이 보였다. 끊어지지 않을 거 같던 인연의 실은 서서히 풀려 이제 마지막 매듭만을 남겨둔 듯 하다.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앞에 펼쳐져있는 몇십년의 무게에 짓눌려 막막해져 정신이 아득해진다.
선우는 상냥하게 인사하며 문 밖을 표류해 나간다. 나는 그것을 잡아둘 힘이 없었다.
2/1
오늘은 동기들과 술을 마시는 날이다.
무슨 기대를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멀어짐을 묵묵히 직면할 각오도 했지만, 일말의 희망 또한 남겨놨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장소에 존재해야했기에 존재했다.
나는 동기와 후배 사이에 앉아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놈의 남성성, 그들에게서 남성성이 느껴진다. 내가 그토록 피해다녔던 그것들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면을 쓰면 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무심코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내포된 폭력성이 양 옆에서 나를 압박해왔고, 내가 탈출할 공간은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도망쳐 나가 심호흡을 했다. 하늘에서 잿빛 눈이 떨어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린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균열이 갈 줄은 몰랐고,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체념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지막 순간을 몸소 느끼는 것.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내려가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대화의 흐름을 관조하며 항상 느껴왔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사실들을 느끼고 끌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수요이자 공급이었다. 각자의 결핍이 있었고, 서로에게서 그것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목적이자 종착지가 아닌 그저 중간 역,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자 최소한의 보험. 약속된 가면 무도회. 책임 없는 쾌락. 그 사실이 화가 나고 싫었다. 그것은 나의 이상과는 너무나도 멀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양 옆에서, 앞에서 느껴지는 무력함, 패배감, 타협과 포기, 현실 순응과 안주함, 그것에서 기인하는 결핍과 후회 또는 자기합리화, 그럼에도 그 자리에 있는 나. 그곳에 있는 모든 분위기, 매 초가 싫어졌다.
나의 소중한 동기들아, 친구들아.
한 달이 지났어.
우리는 서로의 인력만으로 그 장소에 모인 것일까.
그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일지도 몰라. 안정감이나 즐거움을 위해 그 불편한 사실을 잠시 뒤로 미뤄둔 걸지도 몰라.
모두가 답을 알고 있잖아.
답은 아니라는 거야.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야
이제 나는 혼자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사회는 이제 저 멀리서 일어나는 잡음에 불과했다. 나때문에 분위기가 박살나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복합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통제적인 생각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사람들과 멀어지는 이유마저도 자신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싶다는 것이다. 타인의 배려를 이용하여 사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자기 혐오가 더 심해진다.
신촌역에서 헤어졌다. 뒤돌아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덤덤한 생각, 2호선 내선과 외선의 교차와 역행과 표류, 멀어짐, 흘러내림. 시간은 흐른다. 같은 방향의 열차를 탄 친구 또한 먼저 내린다. 마찬가지로 흘려보낸다.
의자에 앉아 반대편 창을 바라보니,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규격화된 의자에 실려 가는 내 모습. 그리고 그 주위를 빼곡히 채운 사람들. 사람들이 이렇게나 가까운데, 정작 손을 뻗어 그들에게 닿을 순 없었다. 한 의자에 두 명이 앉을 순 없었다.
방에 들어가 노래를 틀었다. 나는 그들이 저만치 떨어져있음을 느꼈다. 그들에게 투영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비어 보였다.
어딘가 소속되기 위해 수많은 자기 자신들을 선별하고 조합하여 억지로 흉내내려는 저 모습. 자신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기계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빈 껍데기. 저것은 타인으로 자신을 채우려 하면 그대로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애써 무시하려는 것인가.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저 눈빛들을 보라. 저 멀리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나를 조소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사회 부적응자, 정신병자, 도파민 중독자, 자의식 과잉자, 무심한 아이, 중성이 되고 싶은 친구, 부담스러운 친구, 특이한 친구, 이상한 친구, 철이 덜 든 아이, 그 외의 수많은 나의 파편들, 내 갖잖은 머리로 의도했다고 생각한 나의 모습들이 그들의 사고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조소들.
그들이 나에게 외친다! 그것이 사회이고 인생이라고, 인생은 타협과 포기함의 연속이라고,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타인에 맞춰 자신을 깎아감이 성숙함이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성숙해진다면 난 어른이 되기 싫다! 평생 어리석게, 맹목적으로 내 이상만을 좇아 살아갈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생 방황을 할지라도 난 온전한 나로써 속할 것이다. 확고한 지향점과 함께 있는 힘껏 방황할 것이다. 아브락삭스에게 날아가기 위해 응당 알을 깰 것이다!
필히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 지쳤다. 타인을 규정짓는 것에 지쳤다. 타인에게 규정당함에 지쳤다. 속하지 않음에 지쳤다. 속하려 함에 지쳤다. 가면놀이에 지쳤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지쳤다. 저 시선들을 피해 도망가고 싶다.
나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다. 아니,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 두 달? 방학이 너무나도 짧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나에게 방학은 찾아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꼭 쉬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하지만 쉬어야 한다. 꼭 쉬어야 한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존재를 망각하게 되면, 그제서야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는 번뇌에서, 나를 규정하는 제약들에게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잠깐이라도 사라지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미 그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블로그에 쓰고 있다. 나는 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사라짐인지, 아니면 사라짐에 대한 주위의 시선인지.
이 글을 기여코 사회에 내보내려 했던 것은 내가 겁쟁이처럼 도망만 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힘들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소외감의 깊은 늪에 빠진 나를 구원해줄 이름모를 손길을 편하게 잡으려고 하는 거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선, 소통하기 위해선 내 자신을 깎아내 가면을 써야 한다. 거기서부터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그저 표면에 비친 상일 뿐이고, 그것은 거짓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 있다. 적절한 가면만 쓴다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표면적으로 즐거운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원의 손길들은 항상 나를 향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저 일어나지 않아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세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거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속할 곳이 존재하는지,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들의 형상은 저 멀리서 아른거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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